작성일 : 25-07-0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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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 연합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본 이유는? “수에즈운하를 두고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이 연합해 이집트와 벌인 제2차 중동전쟁(1956년)이 꼭 열흘 걸렸다. 이번 전쟁도 군사적으로 이란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도 장기간 미사일 방어망을 가동하는 건 물리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봤다. 예상보다 전쟁이 길어졌는데, 미국이나 유럽 쪽에선 이번 기회에 이란이 다시 대항하지 못하게 이스라엘 쪽에 시간을 벌어주려는 정치적 노림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도 든다. 전쟁에는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이란의 핵무장 저지가 침공의 목적이라고 했는데, 미국의 이란 핵시설 폭격을 전쟁을 끝낼 명분으로 삼은 것 같다.” ―침공의 실제 명분은 따로 있다는 건가. “이스라엘은 이란의 정권 교체 내지 정권 약화를 위한 전략적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는 게 목표라면 핵시설만 공격하면 된다. 그런데 가스전과 전력망, 국영방송 등 체제 유지를 위한 인프라까지 무력화했다. 가자지구 전쟁에서 그렇듯 이란 침공 과정에서도 사이버 전쟁, 인공지능 전쟁 등 최첨단 전쟁 기술이 동원됐다. 반복적 실험을 통해 원하는 목표를 정확히 대량으로 살상할 수 있는 무서운 전쟁의 시대로 들어선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미국-이스라엘 관계가 변하고 있다 ―미국은 왜 이란 폭격을 감행했을까.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을 두고 ‘우리 모두를 위해 더러운 일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는데, 실제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미국을 위해 ‘더러운 일’을 해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주적이 바뀌었듯이 미국의 주적도 달라졌다. 탈냉전기, 특히 9·11 동시테러(2001년) 이후 미국의 주적은 이슬람이었다. 신냉전의 주적은 중국이고, 미국 세계전략의 중심축도 중동에서 인도·태평양으로 이동했다. 대중국 방어막을 구축하려면 세부적 보완 조치가 필요할 텐데,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도 변하고 있다. 이번 전쟁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서로를 너무 치켜세웠다. 이는 역으로 서로 사이가 안 좋다는 점을 드러내준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일방적 행동을 지속하는 네타냐후 총리가 불편하고 부담스러울 것이다. 이란 폭격으로 마지못해 출구전략의 명분은 제공해줬지만, 미국 내에서 이스라엘의 입지가 달라지고 있다. 이를테면 사우디아라비아가 최신형 미국산 전투기(F-35)를 수입하지 못하는 건 이스라엘의 반대 때문인데,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무기 수출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미국의 폭격에 대한 이란의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나. “이란인은 명분을 중시한다.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명분 있는 출구전략을 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영토를 공격받았으니 상대방을 타격하면서도,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의도가 없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란은 다민족국가고 페르시아인은 전체 인구의 50% 남짓이다. 이를 두고 종족 간 갈등이나 내전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이란의 장구한 역사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기원전 아케메네스왕조부터 페르시아왕조에 이르기까지 다문화·다인종 속에서도 이란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이슬람이란 블랙홀이 모든 문화를 빨아들일 때도, 이란인만 아랍어를 차용해 페르시아어를 발전시켰다. 또 수니파를 시아파로 진화시키고, 이슬람 이전의 조로아스터교 문화와 시아파를 결합했다. 몽골의 지배를 받을 때도 몽골인이 페르시아어를 공용어로 쓰고 이란 문화를 받아들였다. 튀르크계가 주도한 셀주크제국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미워도 공존할 수밖에 없다 ―이란 내부 상황은 어떤가. “제국을 경험한 국가는 호흡이 길고 때를 기다리며 천천히 움직인다. 무인기로 교란하고 보유한 탄도미사일을 모조리 쏟아부어 이란도 이스라엘을 초토화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란도 그렇듯 이스라엘도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미워도 공존할 수밖에 없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지켜야 한다. 이란은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는데, 미국과 서방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 이란 개혁파는 기존 집단주의와 결별하고 경직된 이슬람에서 탈피해 개방적 이슬람주의로 나아가려 한다. 그런데 미국이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게 개혁파인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 집권기(2002년) 때다. 이란은 협력을 요구했는데, 미국은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강경파가 득세하고, 개혁파는 약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사례는 많다. 2020년 1월 미국이 이란 혁명수비대 최정예 부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 장군을 암살하면서 이란 사회에서 반미 감정이 들끓었다. 보수파가 득세해 더욱 강력한 체제가 구축됐고, 이 과정에서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 사건이 벌어지면서 히잡 반대 시위로 번지게 됐다. 이란과 서구가 추구하는 가치는 다르다. 다른 걸 틀렸다고 주장하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9·11 동시테러 뒤 테러와의 전쟁이 벌어지면서 이슬람국가(IS) 등 테러단체가 더욱 기승을 부리지 않았나. 관용과 협력의 시간이 필요하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